건축가는 때때로 수학자가 되야 한다.
용적률(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물의 연면적 비율), 도로사선(인접한 도로 폭에 의한 높이 제한),
일조권 사선제한(인근 건물의 일조권 확보를 위한 높이 제한) 등
건축법규에 적혀 있는 각종 수치들과 사투를 벌이는 것도 건축가의 중요 업무 중 하나다.
흔히 ‘상가주택’으로 불리는 근린생활시설 건축의 경우, 방정식은 더욱 까다로워진다.
주로 임대를 위해 지어지는 건물인 까닭에,
디자인을 고려하기 이전에 법규에 맞는 최대한의 면적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초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들어선 5층짜리 상가주택 ‘함채원(含彩院)’은 이런 숙제를 풀어내면서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살린 모범사례로 호평받고 있는 건물이다.
강동구청 바로 옆, 골목길을 꺾어 들어서면 들쭉날쭉 절묘하게 꺾이며 하늘로 솟은 이 건물이 금세 눈에 띈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는 디림건축사사무소의 김선현(41)·임영환(44·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소장이다.
두 사람은 서울 남산공원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 설계로 2010년 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을,
2012년 쉬즈메디병원으로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한 주목받는 젊은 건축가 부부다.
■ 법규와 디자인 사이
연면적 467㎡(141평)의 5층 건물은 1층에는 카페가, 2층과 3층은 원룸이,
4층과 5층에는 중소기업 ‘플라스틱과 사람들’의 사무실이 들어서 있다.
플라스틱 안료를 생산하는 회사의 사옥으로 쓰이는 데서 착안해,
‘색을 품은 집’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였다.
건물의 기본 용적률은 180%지만,
용적률 완화를 위한 구청의 각종 심의를 거치면서 194%까지 용적률을 늘렸다.
또 건물이 길가 한쪽 모퉁이에 위치해 있어,
각종 사선제한을 만족시키다 보면 건물의 위쪽이 꺾여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법규를 만족시키면서 어떻게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꺾느냐,
건축가들은 이 숙제를 “법규와 건축 사이의 삼각함수를 푸는 과정”이었다고 표현했다.
3개의 서로 다른 기능이 들어가는 복합시설이라 내부 작업도 까다로웠다.
각각의 용도에 맞춰 30~40개의 모형을 만들었다.
기업 사무실과 원룸의 출입구는 건물의 양 끝으로 나누어 배치해 동선을 확실히 분리했다.
4~5층의 사무공간은 좁지만 쾌적한 업무환경을 위해 두 개 층에 걸쳐 오픈된 회의실을 만들었다.
사선으로 꺾여 들어간 부분의 용도를 살려 층마다 작은 테라스를 마련한 것도 아이디어다.
‘플라스틱과 사람들’의 김재중 영업부 과장은
“답답할 땐 테라스나 옥상정원으로 나가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 트랜스포머(변신) 건물
이 건물의 외관은 정면에서 볼 때와 측면에서 볼 때 완전히 다르다.
기본 구조는 노출 콘크리트를 이용해 차분한 느낌을 살리되,
전면부의 상당 부분을 고밀도 목재 패널로 감쌌다.
김 소장은 “ 사옥의 역할을 겸하는 만큼, 무게 있는 느낌을 살리려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카페와 원룸 출입구가 있는 측면은 나뭇결이 느껴지는 콘크리트 위에
검은 상자가 툭 얹혀진 경쾌한 느낌이다.
비슷비슷한 상가건물들 사이에서 독특한 아우라를 발하는 ‘함채원’은
요즘 지역 내 화제거리가 되고 있다.
강동구청 내부에 건물 사진이 전시되고,
“신기한 건물이 생겼다”고 소문이 나면서 견학을 오는 사람들도 생겼다.
임 교수는
“결국 도시의 풍경을 만드는 것은 특정 단지에 지어지는 단독주택보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근린생활시설이다.
상가주택들이 달라질 때, 서울의 풍경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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